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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 저승길의 검은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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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립션 (250자 내외)
조선 시대, 명문가의 규수 이수희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던 중 검은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를 만난다. 한 달의 유예를 얻은 수희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을 이승에 묶고 있는 미련과 한을 풀어가지만, 그 과정에서 저승사자와 예상치 못한 감정이 싹튼다. 인간과 저승사자 사이의 금지된 감정,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주하는 가장 깊은 인간 감정을 담은 이야기.
후킹멘트 (250자 내외)
"이제 한 달 후면 그대의 목숨이 다하오. 미련 없이 떠날 준비를 하시오."
차가운 저승사자의 선고에 이수희는 매일 밤 그를 기다렸다. 죽음을 앞둔 인간과 인간의 감정을 잊은 저승사자 사이에 피어오른 금지된 감정. 그러나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는 누구도 넘을 수 없는 법. 저승으로 향하는 길, 꽃잎은 지고 두 영혼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오늘 밤, 당신의 심장을 울릴 가장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 병으로 시름시름 앓던 이수희와 저승사자의 첫 만남, 한 달의 유예
조선 후기, 양반 가문의 깊은 안채. 봄바람이 창문을 살랑이는 밤이었다. 이수희는 병으로 수척해진 몸을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열아홉의 꽃다운 나이지만, 그녀의 안색은 창백했고 입술은 푸르스름했다. 수개월째 원인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던 그녀는 오늘따라 유난히 몸이 무거웠다.
"아가씨, 미음 한 그릇 더 드시지요."
"괜찮아, 복녀야. 이제 배불러. 너도 가서 쉬어."
시녀 복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수희를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고집 앞에 어쩔 수 없이 방을 나갔다. 혼자 남은 수희는 창 밖으로 보이는 달을 바라보았다. 둥근 보름달이 구름에 가려 흐릿했다.
"이렇게 죽어가는 걸까..."
수희가 중얼거렸을 때, 갑자기 방 안의 등불이 흔들렸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지만, 창문은 닫혀 있었다. 수희가 이상하게 여겨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방 구석에 검은 도포를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누, 누구세요? 어떻게 들어오셨죠?"
사내는 침묵했다. 그의 얼굴은 달빛 아래 차갑게 빛났고, 눈동자는 깊고 어두웠다. 마치 별이 없는 밤하늘 같았다.
"이수희, 나는 너를 데리러 왔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이상하게도 수희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을 만난 것 같은 익숙함이 느껴졌다.
"당신은... 저승사자인가요?"
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이 네 생의 마지막이다. 준비하거라."
수희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의 말이 놀랍지는 않았다.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예감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녀는 말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실 수 없나요?"
사자는 눈썹을 살짝 올렸다.
"네가 죽을 날은 이미 정해져 있다. 바꿀 수 없다."
"제 삶이 너무 짧았어요. 아직 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아요. 제발...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수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저승사자는 그녀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인간들은 다 그렇게 말한다. 백 년을 살아도 부족하다 말하지."
"그럼... 딱 한 달만이라도 주세요. 한 달 동안 제가 이루지 못한 소원들을 이룬다면... 미련 없이 따라가겠습니다."
사자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소매 속에서 작은 시계를 꺼내어 보았다. 모래시계처럼 생겼지만, 그 안의 모래는 붉은색이었다.
"인간의 목숨을 다루는 것은 내 권한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시계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 생명의 실은 이미 많이 닳았지만, 특별히 한 달의 유예를 주마. 그동안 네 미련을 정리하거라. 한 달 후 보름달이 뜨는 밤, 내가 다시 올 것이다."
수희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기뻐할 일이 아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법. 다만 미루었을 뿐이니."
사자의 말은 냉정했지만, 수희에게는 한 달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알아요. 하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 정말 감사합니다."
사자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말했다.
"내가 매일 밤 찾아와 네 상태를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경고하마.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거라. 한 달 후에는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을 테니."
그 말을 남기고 저승사자는 방 안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등불이 다시 고요하게 타올랐다. 수희는 마치 꿈을 꾼 것 같았지만, 그녀의 몸이 전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숨쉬기가 편해졌고, 가슴을 짓누르던 통증도 줄어들었다.
"한 달... 단 한 달만 있으면 된다."
그녀는 중얼거리며 창밖의 달을 다시 바라보았다. 구름이 걷히고 보름달이 선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마치 그녀에게 남은 시간을 세기 시작한 것처럼.
2: 유예 기간 동안 매일 밤 이어지는 수희와 저승사자의 대화
다음 날부터 수희의 몸은 신기하게도 나아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앓던 병이 마법처럼 사라진 것이다. 가족들은 기뻐했고, 수희 자신도 놀라웠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단지 한 달의 유예일 뿐, 진짜 죽음은 여전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저녁이 되자 수희는 방에 홀로 남았다. 창가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자가 올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등불이 흔들리며 검은 도포를 입은 사자가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수희의 인사에 사자는 놀란 듯 보였다.
"네가 나를 기다렸다고?"
"네. 어제 매일 밤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대부분의 인간들은 내 방문을 두려워한다."
사자의 말에 수희는 미소지었다.
"전 이미 죽음을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두렵지 않아요."
"흥미롭구나. 그런데 오늘 네 몸이 나아 보이는군."
"네, 신기하게도 병이 좋아졌어요. 사자님 덕분인가요?"
사자는 고개를 저었다.
"내 힘이 아니다. 네 목숨이 잠시 연장되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이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
수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남은 시간을 소중히 쓰려고 해요."
"그래? 오늘은 무엇을 했지?"
사자의 질문에 수희는 놀랐다. 그가 자신의 일상에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다.
"오늘은... 오랜만에 정원을 거닐었어요. 꽃들이 피어있었는데, 그 향기가 얼마나 달콤하던지... 병에 걸린 후로 처음 느껴본 행복이었어요."
말을 하는 동안 수희의 눈이 반짝였다. 사자는 그런 그녀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꽃의 향기가 그렇게 중요한가?"
"사자님은 꽃 향기를 맡아보신 적 없으세요?"
"나는... 인간들처럼 감각을 느끼지 않는다."
수희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너무 슬픈 일이네요. 꽃향기, 바람의 감촉, 햇살의 따스함... 이런 것들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데."
사자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나에게 삶과 죽음은 단지 순환일 뿐이다. 아름다움이나 슬픔 같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 제가 알려드릴게요. 남은 한 달 동안, 매일 하나씩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보여드릴게요."
사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일을 하려 하지?"
"음...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저를 데려가실 분이니까요. 적어도 저를 데려가는 분이 제가 왜 이 세상에 미련을 두는지 이해하셨으면 해요."
사자는 수희의 제안을 묘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 속에 희미한 호기심이 스쳐 지나갔다.
"좋다. 네 제안을 받아들이지. 하지만 그것이 네 운명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알고 있어요. 단지...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을 뿐이에요."
그날 밤 이후로, 수희와 사자는 매일 밤 만났다. 사자는 항상 같은 시간에 나타났고, 수희는 그날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보고 느낀 아름다움을 사자와 나누었다. 달빛 아래 반짝이는 연못, 새벽녘의 이슬방울, 비 온 뒤 나타나는 무지개...
사자는 처음에는 무심한 듯 듣고만 있었지만, 점차 그의 질문이 늘어갔다. 그는 인간의 감정과 경험에 대해 더 알고 싶어했다.
"오늘은 왜 울었지? 슬픈 일이 있었나?"
수희는 놀랐다. 사자가 자신의 눈물을 알아챈 것이다.
"아니요... 오늘은 행복해서 울었어요. 제 여동생이 첫 글을 썼거든요. 너무 기특해서..."
"행복해서 운다고? 눈물은 슬픔의 표현 아닌가?"
"인간의 감정은 복잡해요. 너무 기쁘거나, 감동받거나, 고마울 때도 눈물이 나요."
사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하기 어렵구나. 하지만... 흥미롭다."
수희는 미소지었다.
"내일은 사자님께 더 재미있는 것을 보여드릴게요. 제가 좋아하는 책이 있는데..."
그렇게 그들의 대화는 밤마다 이어졌다. 수희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사자는 조금씩 인간의 삶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3: 수희의 지난 삶과 미련들, 그녀를 이승에 묶는 한
어느 날 밤, 수희는 사자를 기다리며 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남은 날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등불이 흔들리고 사자가 나타났다.
"오늘은 무엇을 보여주려 하지?"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제가... 왜 이렇게 병이 들었는지 아세요?"
사자는 말없이 수희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지만,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내 역할은 영혼을 인도하는 것이지, 그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다."
"그렇겠죠..." 수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싶어요. 제가 왜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떠나야 하는지..."
사자는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네 운명은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것이 이치다."
"운명이라... 그럼 제가 삼 년 전 그 선택을 하지 않았어도 결과는 같았을까요?"
"무슨 선택을 말하는 거지?"
수희는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전 약혼자가 있었어요. 부모님이 정해주신 혼인이었죠. 하지만... 전 다른 사람을 사랑했어요."
사자의 눈이 미세하게 반짝였다.
"계속 말해 보거라."
"그는 서생이었어요. 가난했지만 학식이 깊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죠. 우연히 서당 앞에서 만나 책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렇게 우리의 금지된 만남이 시작됐어요."
수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부모님이 아시면 큰일 날 거라 알면서도, 저희는 몰래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하지만 결국 약혼자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약혼자는 분노했고, 서생을 찾아가 심하게 구타했어요. 그리고... 그를 먼 곳으로 유배시켰죠."
수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 후로 소식이 끊겼어요.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그저 그가 산에서 병을 얻었다는 소문만 들렸을 뿐이에요. 그때부터 제 마음도 함께 병들기 시작했고... 몸도 따라 아프기 시작했어요."
사자는 수희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그래서 한이 맺혔구나. 그가 네 병의 원인이라 생각하는군."
"한이라... 맞아요. 제 가슴에는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한 한, 그를 지키지 못한 한, 그와 함께 하지 못한 한이 가득해요."
수희는 작은 상자를 열어 낡은 편지 몇 장을 꺼냈다.
"이게 그가 제게 보낸 마지막 편지예요. 늘 품고 다니며 읽었죠. '우리가 다른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이렇게 끝맺었어요."
사자는 편지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그래서 네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인가? 저승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수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 그가 살아있길 바라요. 다만... 떠나기 전에 그가 무사한지, 단 한 번만이라도 알고 싶어요. 그게 제 마지막 소원이에요."
사자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인간의 감정은 복잡하구나. 사랑이 이토록 고통을 주는데도, 왜 그렇게 갈망하는 것인지..."
"사랑은... 고통만이 아니에요. 행복도, 설렘도, 따스함도 주죠. 제 삶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들은 모두 그와 함께였어요."
수희의 말에 사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냉정했던 눈빛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네 한이 깊구나. 그런 한을 품고 저승에 가면 원귀가 될 수도 있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한을 풀어야 한다. 네 소원이 무엇인지 이제 알았으니, 남은 시간 동안 그 답을 찾아보거라."
사자의 말에 수희의 눈이 희망으로 빛났다.
"그를...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나는 단지 네 영혼을 인도할 뿐."
하지만 그의 말과 달리, 사자의 눈빛에는 무언가 결심한 듯한 기색이 보였다. 그날 밤, 사자는 평소보다 일찍 떠났고, 수희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4: 인간의 감정을 배워가는 저승사자, 서서히 변화하는 두 사람의 관계
다음 날 밤, 사자는 평소와 달리 약간 늦게 나타났다. 그의 도포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고, 평소의 단정함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오늘은 늦으셨네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수희의 물음에 사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네 이야기를 듣고... 조금 알아본 것이 있다."
"알아보셨다고요? 무엇을요?"
사자는 소매 속에서 작은 물건을 꺼냈다. 낡은 떡살이었다.
"이것을 아는가?"
수희는 놀라서 그것을 받아들었다. 손이 떨렸다.
"어떻게... 이걸 어디서 찾으셨어요? 이건 제가 그에게 선물했던..."
"그렇다. 네 서생이 가지고 있던 물건이다."
"그럼 그는... 살아있나요? 어디 있는지 아세요?"
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있다. 하지만 많이 아프다. 남쪽 섬의 한 암자에서 스님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더군."
수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살아있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왜 저를 위해 이런 일을 하셨나요?"
사자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마치 자신의 표정을 감추려는 듯했다.
"네가 한을 품고 저승에 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하지만 그의 말과 달리, 수희는 사자의 행동에서 다른 의미를 느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사자에게 다가갔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사자는 당황한 듯했다.
"거리를 유지하거라. 나는 저승의 존재다. 너와 가까워지면 안 된다."
"왜요? 사자님도 감정이 있잖아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저를 도와주셨잖아요."
"나는...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되는 존재다."
수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사자를 바라보았다.
"모든 존재는 감정을 가질 권리가 있어요. 사자님도 마찬가지예요."
그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미묘하게 변했다. 사자는 여전히 거리를 두려 했지만, 수희와의 대화를 더 기다리게 되었다. 그는 수희가 들려주는 인간 세상의 이야기, 그녀의 꿈과 희망, 사랑과 슬픔에 점점 더 관심을 보였다.
어느 날 밤, 사자는 수희에게 물었다.
"너는 왜 그 서생을 그토록 사랑했지? 부와 지위를 포기하면서까지."
수희는 미소지었다.
"사랑은 이유가 필요 없어요. 그저... 그 사람의 곁에 있으면 행복했어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뛰고, 그의 웃음을 보면 저도 웃게 되었죠. 그가 책을 읽어줄 때면 세상의 모든 걱정이 사라졌어요."
사자는 수희의 말을 곱씹듯 생각에 잠겼다.
"그것이... 사랑인가?"
"네. 사랑은 때로는 이성을 잃게 만들고, 때로는 큰 용기를 줘요. 누군가를 자신보다 더 소중히 여기게 되는 마음이죠."
사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그의 얼굴에 미세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나도 한때... 그런 감정을 알았던 것 같다."
"정말요? 사자님도 사랑해 본 적이 있으세요?"
사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기억이... 흐릿하다. 저승사자가 되기 전의 일은 대부분 잊혀진다."
"사자님도 원래는 인간이셨던 건가요?"
"그렇다. 모든 저승사자는 한때 인간이었다. 특별한 이유로 선택받아 이 길을 걷게 된 것뿐."
수희는 놀라움과 동시에 궁금증이 생겼다.
"어떤 이유로 사자님이 되신 거예요?"
사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이 스쳤다.
"나도... 한을 품고 죽었다. 그리고 선택을 받았지. 타인의 죽음을 인도하며 나 자신의 한을 풀게 될 것이라고."
"그 한은... 풀리셨나요?"
"아직. 수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한은 남아있다."
수희는 조심스럽게 사자의 손을 잡았다. 놀랍게도 그의 손은 차갑지 않고 따뜻했다.
"저도 한이 있고, 사자님도 한이 있네요. 우리... 서로의 한을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사자는 수희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는 손을 빼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달빛 아래 오랫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날 이후, 사자는 점점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수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주었고, 수희도 자신의 기억과 꿈을 나누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들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유대감이 생겨났다.
5: 마지막 날이 다가오며 마주하는 잔혹한 진실과 선택의 순간
보름달이 다시 차오르며 수희에게 주어진 한 달의 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밤, 수희는 초조하게 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마음은 복잡했다. 서생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위안이 되었지만, 이제 사자와 헤어진다는 생각에 예상치 못한 슬픔이 몰려왔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군."
사자가 나타났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무거움이 깃들어 있었다.
"네, 내일이면... 저를 데려가시겠죠?"
사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눈빛은 복잡했다.
"수희야, 네게 말해야 할 것이 있다."
그의 진지한 어조에 수희는 긴장했다.
"무슨 일이신가요?"
"네 서생... 그는 내일 세상을 떠난다."
수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무슨... 무슨 말씀이세요?"
"그의 생명의 끈도 이미 많이 닳았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그도 내일 보름달이 뜰 때 숨을 거둘 것이다."
"아니에요... 그럴 수 없어요!" 수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겨우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제 그마저도..."
사자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이것이 운명이다."
"운명이라고요? 너무 잔인해요... 우리는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만날 수 없는 건가요?"
"그것은... 알 수 없다." 사자가 망설이며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하다."
수희가 눈물 어린 눈으로 사자를 바라보았다.
"어떤 방법인가요?"
"내가 네 대신 그를 데려갈 수 있다. 그러면 너는... 좀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제가 대신 살고, 그가 죽는다고요? 안돼요!"
"그렇다면..." 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다른 선택이요?"
"나의 생명을 나누어 너희 둘에게 줄 수 있다. 그러면 너희는 몇 년간 더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
수희는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그럼 사자님은요?"
"나는 사라질 것이다. 저승사자의 임무를 저버리는 대가로."
"안돼요! 그건... 그건 너무해요. 사자님이 저희를 위해 그런 희생을 할 수는 없어요."
"이것이 내 선택이다, 수희야." 사자의 눈빛이 결연했다. "처음으로...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수희는 혼란스러웠다. 사자의 희생으로 서생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꿈만 같았지만, 그것은 사자의 존재를 대가로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다. 내일 보름달이 뜨기 전에 결정해야 한다." 사자가 말했다. "잘 생각해보거라."
사자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손을 댔다. 수희는 그의 손길에서 따스함을 느꼈다.
"내일 마지막으로 만나자."
6: 마침내 떠나는 저승길, 두 영혼의 마지막 이별과 약속
마지막 날, 해가 저물고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희는 방 안에서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히 빗었다. 마치 중요한 만남을 앞둔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수희야."
사자의 목소리에 수희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평소와 달리 창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고, 문을 통해 들어왔다. 그의 검은 도포는 달빛에 은은히 빛났고, 얼굴은 어느 때보다 인간적으로 보였다.
"결정했니?"
수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밤새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네. 사자님의 희생은 받을 수 없어요. 저는... 제 운명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사자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그럼 서생은? 그를 포기하는 것인가?"
"포기가 아니에요. 오히려... 진정한 의미로 그를 사랑하기로 했어요. 저를 위해 그가 더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수희는 창밖의 달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자님이 사라지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그녀의 말에 사자는 한걸음 다가왔다.
"정말 그것이 네 선택인가?"
"네. 하지만 한 가지만 부탁드려요. 제발... 그를 데려가실 때, 편안하게 해주세요. 그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사자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마. 내가 직접 그를 데려가고, 그에게 네 마지막 인사를 전하겠다."
"고마워요..." 수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제 저도 갈 준비가 됐어요."
사자는 수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 손을 잡았다. 놀랍게도 그의 손은 차갑지 않고 따뜻했다.
"가기 전에 한 가지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
"무엇인가요?"
"내가 저승사자가 된 이유... 그것도 사랑 때문이었다."
수희는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나도 한때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나는 그녀를 찾아 저승까지 쫓아갔지. 그러나 찾지 못했다."
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결국 나는 저승차사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내 영혼을 바치는 대신, 그녀를 찾게 해달라고. 그렇게 나는 저승사자가 되었지만... 수백 년이 지나도 그녀를 찾지 못했다."
"그 분을... 아직도 찾고 계신가요?"
사자는 미소지었다. 슬프지만 따뜻한 미소였다.
"이제는 아니다. 네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 진정한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놓아주는 것이라는 걸."
수희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녀는 사자의 손을 꼭 잡았다.
"함께 가요."
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천천히 방을 나섰다. 밖은 이미 밤이었고, 보름달이 하늘 높이 떠 있었다. 달빛을 따라 나타난 길이 있었다. 저승으로 가는 길이었다.
"두렵니?"
"아니요. 사자님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요."
그들은 천천히 달빛 길을 따라 걸었다. 갈수록 수희의 몸은 가벼워졌고, 이승의 고통은 사라졌다.
"사자님, 저승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내가 약속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믿고 싶다. 우리의 인연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수희는 미소지었다. 그녀의 모습이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저도 믿어요. 언젠가... 어딘가에서..."
그녀의 마지막 말이 공중에 흩어졌다. 수희의 영혼은 빛이 되어 밤하늘로 사라졌다. 사자는 홀로 남아 그 빛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날 밤, 멀리 떨어진 섬의 한 암자에서 병든 서생도 숨을 거두었다. 그의 곁에는 검은 도포를 입은 사자가 조용히 서 있었다. 서생의 영혼이 몸을 떠나자, 사자는 그에게 속삭였다.
"수희가 기다리고 있다. 그녀에게로 가거라."
서생의 영혼은 달빛을 따라 저승길로 향했다. 사자는 그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미소지었다. 그리고 사자도 천천히 저승길을 따라 사라졌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저승의 어딘가에서 수희와 서생은 다시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때때로, 달이 유난히 밝은 밤이면, 검은 도포를 입은 사자가 그들을 멀리서 지켜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얼굴에는 평온한 미소를 띤 채.
꽃이 진 저승길에서 피어난 세 영혼의 인연은, 이승의 슬픔을 넘어 영원한 평화를 찾았다고 한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꽃이 진 저승길: 그대를 데려가는 검은 사자의 발걸음' 이야기 어떠셨나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피어난 특별한 인연, 그리고 운명의 끝에서 마주한 선택의 순간이 여러분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저승길을 걷게 될 운명입니다. 그러나 오늘 들으신 이야기처럼, 어쩌면 그 길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여정일지도 모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수 있다는 위로를 이 이야기가 전해드렸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자신의 삶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떤 미련과 한을 풀고 싶으신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만남이 여러분의 운명을 바꾼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다음 이야기에서는 또 다른 조선시대의 숨겨진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들려드리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을 통해 다음 이야기도 놓치지 마세요.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