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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다시 연애하면 겪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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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립션
"30년 만에 다시 설레는 마음을 느꼈어요. 그런데 연애가 아니라 전쟁이 시작됐죠." 12년 전 아내와 사별한 68세 김종석 씨가 노인대학에서 만난 64세 박미자 씨와 설레는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의 반대, 건강 문제, 재산 문제 등 예상치 못한 장애물들이 나타났습니다. 나이 들어 다시 사랑을 찾은 두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황혼 연애의 현실과 극복법을 들려드립니다.
후킹멘트
"아들이 그러더군요. '아버지, 돈 때문에 접근하는 여자 조심하세요.' 내가 이 나이에 사랑하면 안 된다는 건지... 자식들은 우리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만으로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봅니다."
나이 들어 다시 찾아온 사랑. 그러나 황혼 연애에는 젊은 시절과는 전혀 다른 현실적인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속, 건강 돌봄, 자녀들의 반대, 서로 다른 생활 습관... 이 모든 장벽을 뚫고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12년 만에 사랑을 다시 시작한 68세 남성의 가슴 아픈 고백과 그가 발견한 지혜를 들어보세요.
1: 노인대학 수업 - 우연한 만남
안녕하세요, 저는 김종석이라고 합니다. 올해 68세이고, 12년 전에 아내와 사별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아마도 그날, 강남 노인대학 서예 교실에서부터일 것 같습니다.
아내가 떠난 후, 저는 줄곧 혼자 살았습니다. 물론 아들과 딸이 있지만, 그들은 각자의 가정이 있으니까요. 처음 몇 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30년 넘게 함께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면, 마치 절반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에요. 방 한구석에 놓인 빈 의자를 보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무료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여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하려고 했지만 미루던 것들을요. 등산도 다니고, 바둑도 두고... 그러다 작년 가을부터 노인대학 서예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글씨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날은 평범한 목요일 오전이었습니다. 서예 선생님께서 오늘의 과제로 '백발백중'이란 사자성어를 주셨죠. 저는 집중해서 붓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저기... 먹이 좀 필요하신가요?"
옆자리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단정한 회색 머리를 한 여성분이 먹을 담은 그릇을 내밀고 계셨습니다. 박미자 씨였습니다. 그녀는 이번 학기에 새로 들어온 수강생이었는데, 항상 조용히 자리에 앉아 글씨를 쓰던 분이었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제가 먹그릇을 받아들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너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런 미소였어요. 문득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이었죠.
수업이 끝나고 정리를 하는데, 미자 씨가 또 다가왔습니다.
"김 선생님, 글씨체가 정말 멋있으세요. 얼마나 연습하셨어요?"
"아니에요, 저도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박 선생님 글씨도 정갈하던데요."
"저는 아직 초보예요. 선생님께 조언을 좀 구할 수 있을까 해서요."
이렇게 우리는 서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노인대학 근처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었습니다. 아내가 떠난 후 12년 동안, 여성과 이렇게 차 한 잔 하며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거든요.
미자 씨는 64세로, 남편과 7년 전에 이혼했다고 했습니다. 30년 넘게 살았지만, 아이들이 모두 독립한 후 서로 할 말이 없어졌다고 하더군요. 그녀는 큰딸 가족과 함께 살다가 얼마 전 따로 나와 혼자 살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혼자 사는 게 때로는 외롭지만, 자유롭다는 건 좋더라고요."
미자 씨의 말에 저는 공감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과거,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노년의 일상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잘 통했어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편안함이었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중, 제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습니다.
"이번 주말에... 혹시 시간 되시면 국립중앙박물관에 같이 가실래요? 새로운 서예전이 열린대요."
말을 내뱉고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데이트를 신청한 건가요? 68세의 나이에?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미자 씨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되었죠. 거절당하면 어쩌나, 괜히 부담을 드린 건 아닐까...
그런데 미자 씨는 살짝 볼을 붉히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좋아요. 토요일 오후는 어떠세요?"
집에 돌아오는 길, 저는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68세의 나이에 다시 설렘을 느낀다니, 제 자신도 믿기지 않았어요. 문득 아내 생각이 났습니다. '당신이 보면 웃으시겠지? 나 이제 다시 데이트를 한다니...'
집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옷장을 열었습니다. 주말에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제 모습이 우스웠습니다. 마치 첫 데이트를 앞둔 청년처럼 설레고 긴장됐으니까요. 이렇게 제 인생에 예상치 못한 새 장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2: 첫 데이트 - 다시 찾아온 설렘
토요일 오후 2시, 저는 국립중앙박물관 입구에서 미자 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딸에게 전화해서 조언을 구했죠. 딸은 처음에 놀라더니, 곧 엄청 좋아했습니다.
"아빠, 정말요? 데이트라니! 너무 좋은데요. 네이비 블루 셔츠에 베이지색 바지 입으세요. 그리고 꼭 향수 뿌리세요!"
딸의 조언대로 옷을 입고, 20년 만에 향수까지 뿌렸습니다. 덕분에 전철에서 옆자리 할머니가 계속 저를 흘끔거리시더군요.
"김 선생님!"
미자 씨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밝은 색상의 원피스에 가벼운 카디건을 걸치고, 단정한 모자를 쓰고 있었어요.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이었습니다.
"기다리셨어요? 좀 늦었나요?"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어요. 오늘 참 멋지시네요."
미자 씨가 살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고마워요. 솔직히 무슨 옷을 입을지 한참 고민했어요."
"저도요!" 저도 모르게 솔직하게 말했고, 우리는 함께 웃었습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서예전을 감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서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작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미자 씨의 지식이 놀라웠습니다.
"이건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에요. 보세요, 이 힘 있는 필체가..."
"미자 씨는 서예에 대해 꽤 아시네요?"
"취미로 조금 공부했어요. 사실... 제 아버지가 서예가셨거든요. 어릴 때부터 붓글씨를 보고 자랐죠."
우리는 전시를 둘러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미자 씨가 교사로 30년간 일했다는 것, 두 딸과 한 아들이 있다는 것,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제 이야기를 했어요. 중소기업에서 은퇴한 일, 아내와의 추억들, 그리고 아들과 딸에 대한 이야기를요.
"아내분이 먼저 떠나셨다니 정말 힘드셨겠어요."
"네, 처음 몇 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지금도 가끔은 그립고... 하지만 시간이 약이더군요."
미자 씨가 공감의 눈빛으로 바라봤습니다. "삶이란 게 참 예측할 수 없죠. 저도 평생 한 남자와 살 줄 알았는데..."
전시를 다 본 후, 우리는 박물관 내 카페에 앉았습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사실... 이렇게 데이트하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요." 미자 씨가 차를 홀짝이며 말했습니다.
"저는 수십 년 만이에요. 아내와 결혼하고 나서는 데이트라는 걸 거의 안 했으니까요."
"맞아요, 결혼하면 그냥 일상이 되잖아요. 데이트는커녕 저녁에 TV 앞에 앉아 말도 없이 각자 핸드폰만 보고..."
우리는 그렇게 공감대를 형성해갔습니다. 젊은 시절의 데이트와는 달랐습니다. 더 깊고, 더 진실된 대화였어요. 인생의 기쁨과 슬픔, 후회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이야기 누구한테 할 수 있겠어요? 자식들은 '괜찮아요?'라고 물어봐도 정말 속마음은 말하기 어렵잖아요."
미자 씨의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자식들은 우리를 걱정하지만, 또래가 아니니 정말 깊은 이야기는 나누기 어렵죠.
카페를 나와 한강공원을 거닐며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해가 서서히 지고, 강물에 붉은 노을이 비치는 아름다운 저녁이었어요.
"김 선생님,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오랜만에 편안하게 웃었네요."
"저도요. 이렇게... 다시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는 게 좋네요."
그때 미자 씨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다음 주에도... 혹시 시간 되세요?"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네, 물론이죠. 어디든 가고 싶으신 곳 있으세요?"
"사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클래식 공연이 있어요. 둘이 가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데이트 약속이 잡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는 오랜만에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누가 봐도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행복한 남자의 모습이었겠죠. 68세의 나이에, 새로운 설렘과 기대감을 느끼는 제 자신이 신기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문득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죠. 하지만 곧, 아내가 살아있다면 오히려 응원해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는 항상 제가 행복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여보, 내가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있어요. 괜찮죠?" 침대에 누워 속삭였습니다.
물론 대답은 없었지만,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저의 황혼 연애는 조용히, 그러나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3: 자녀들의 반응 - 예상치 못한 장벽
미자 씨와 만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저는 용기를 내서 자녀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함께 식사하자고 초대했어요. 딸 은정이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들 준혁이는 아직 몰랐거든요.
"아버지, 무슨 중요한 이야기 있으세요? 갑자기 다 모이자고 하시길래..." 준혁이가 물었습니다.
삼겹살을 구우며 저는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갑자기 긴장이 되더군요. 마치 십 대 시절, 부모님께 여자친구 생겼다고 말하는 기분이었어요.
"음... 아버지가 요즘 만나는 분이 있어."
"누구요? 동창회 친구? 아니면 바둑 두시는 분?" 준혁이가 고기를 뒤집으며 무심히 물었습니다.
"아니... 그게... 여자 분이야."
식탁이 순간 조용해졌습니다. 은정이는 미소를 지었지만, 준혁이는 고기 뒤집던 젓가락을 떨어뜨렸어요.
"여자요? 어떤... 여자요?"
"노인대학에서 만난 분이야. 박미자 씨라고... 64세이시고, 전직 교사셔. 참 좋은 분이야."
준혁이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반면 은정이는 신이 난 듯했어요.
"오빠, 이제 봤어? 아빠가 얼마나 젊어 보이시는지! 나는 응원해요, 아빠. 박 선생님 사진 보여주세요!"
저는 조금 안심하며 핸드폰에서 미자 씨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둘이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이었죠.
"와, 정말 우아하시네요. 아빠 취향이 있으시네~" 은정이가 놀렸습니다.
하지만 준혁이는 계속 심각한 표정이었어요. "아버지, 잘 아시는 분이에요? 어떻게 사는지, 가족 관계는 어떤지..."
"응, 충분히 알아가고 있어. 다 괜찮은 분이야."
준혁이가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버지, 제 말 오해하지 마세요. 하지만... 이 나이에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특히 재산 문제라든가..."
"준혁아!" 은정이가 끼어들었습니다. "아빠가 연애하시겠다는데 벌써 재산 타령이야?"
"누나, 현실적으로 생각해야지. 요즘 노인 대상으로 재산 노리는 사기꾼도 많다고!"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물론 자식들이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했지만, 미자 씨를 그런 사람으로 의심한다는 게 불편했어요.
"준혁아, 미자 씨는 그런 분이 아니야. 자기 집도 있고, 연금도 받으시는 분이야. 내 돈 필요 없으실 만큼 경제적으로 독립하신 분이라고."
"아버지, 지금은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나중에 결혼까지 생각하시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어요. 어머니가 남겨주신 집이랑 재산이 있잖아요. 그건 우리 가족의 소중한 자산이에요."
은정이가 화를 냈습니다. "오빠! 어떻게 그런 말을 해! 그건 아빠 재산이지, 우리 재산이 아니잖아!"
식사 자리는 점점 불편해졌습니다. 준혁이는 결혼하면 재산이 합쳐질 수 있고, 만약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면 상속 문제가 복잡해질 거라며 걱정했어요. 반면 은정이는 제 행복을 응원한다고 했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현실적인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특히 준혁이의 반응이 저를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아들이 저보다 제 재산에 더 신경 쓰는 것 같아 서글펐어요.
그날 밤, 미자 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미자 씨, 오늘 자식들에게 우리 관계를 이야기했어요."
"어머, 정말요? 어떻게 됐나요?"
"딸은 좋아하던데... 아들이 좀 반대해요. 재산 문제를 걱정하더라고요."
전화 너머로 미자 씨의 한숨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지난주에 큰딸에게 종석 씨 이야기를 했거든요. 딸이 그러더군요. '엄마, 그 사람 재산은 얼마나 돼?'"
우리는 잠시 말없이 있다가, 이내 쓴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우리가 이 나이에 재산 때문에 만난다고 생각하나 봐요." 미자 씨가 말했습니다.
"그러게요.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만으로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요?"
4: 건강 문제 - 현실의 무게
미자 씨와 교제한 지 3개월째 되던 날, 저는 작은 이벤트를 계획했습니다. 동네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자고 제안했죠. 은정이에게 비밀리에 도움을 받아 샌드위치와 과일, 그리고 와인까지 준비했습니다. 아, 물론 노인에게 와인은 조금만요. 두 잔 이상은 우리 같은 노인에겐 모험이니까요.
날씨가 무척 좋았습니다. 5월의 따스한 햇살 아래, 우리는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미자 씨가 손수 만든 유자차를 보온병에 가져오셨는데, 그 맛이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종석 씨, 이거 제가 어제 밤늦게까지 준비한 거예요. 맛있죠?"
"정말 맛있어요. 미자 씨가 만든 건 다 맛있어요."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손을 잡고 공원을 거닐었죠. 20대 연인들처럼 수줍게요. 그런데 갑자기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아, 잠시 숨이 차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하지만 점점 증상이 심해졌습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워지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어요. 제가 협심증 환자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운동이 문제였던 것 같아요. 공원에서 조금 빠르게 걸었거든요.
"종석 씨? 괜찮으세요? 얼굴이 창백해요!"
미자 씨의 목소리가 점점 멀게 들리더니, 눈앞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어요.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응급실 침대 위였습니다. 희미한 시야로 미자 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종석 씨, 정신이 드세요? 의사 선생님을 불러올게요."
미자 씨가 서둘러 의사를 불러왔습니다. 의사는 다행히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했어요. 협심증 발작이지만, 적시에 병원에 온 덕분에 큰 문제는 없다고요.
"약을 제때 드셨나요?" 의사가 물었습니다.
"아... 그게... 오늘 아침에 잊어버렸어요."
미자 씨의 표정이 더 걱정스러워졌습니다. 의사는 약을 잘 챙겨 먹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다음 진료 예약을 잡았어요.
간단한 검사 후, 저는 퇴원 허가를 받았습니다. 미자 씨가 택시를 잡아 제 집까지 데려다주었어요.
"정말 죄송해요, 미자 씨. 우리의 데이트를 망쳐버렸네요."
미자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건강이 최우선이죠. 근데... 종석 씨, 협심증이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요."
사실 그동안 제 건강 상태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약간 부끄럽기도 했고, 새 연인에게 아픈 노인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미자 씨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종석 씨, 우리 나이에 건강 문제가 있는 건 당연한 거예요. 저도 관절염이 있고, 혈압약도 먹고 있어요. 서로 솔직해야죠."
제 집에 도착해서, 미자 씨는 제 약을 정리해주었습니다. 약통마다 언제 먹어야 하는지 라벨을 붙여주셨어요.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보더니 혀를 찼습니다.
"이렇게 드시면 안 돼요. 협심증 환자는 식이 조절이 중요해요. 제가 내일 건강식을 좀 만들어올게요."
그렇게 말하는 미자 씨의 모습이 문득 아내와 겹쳐 보였습니다. 아내도 항상 제 건강을 이렇게 챙겼었죠.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미자 씨, 고마워요. 하지만 부담스러우실 텐데..."
"부담이라뇨. 제가 걱정돼서 그래요. 혼자 계시면 약도 제때 안 드시고..."
그날 저녁, 미자 씨가 떠난 후 제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준혁이었어요.
"아버지, 병원에 가셨다고요? 왜 저한테 연락 안 하셨어요?"
아마도 병원에서 보험 처리할 때 연락처로 등록된 준혁이에게 알림이 갔나 봅니다.
"괜찮아, 별 일 아니야."
"그 여자분이랑 있으셨던 거예요?"
"응, 미자 씨가 119 불러주고 계속 함께 있어줬어."
전화 너머로 준혁이의 한숨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 이래서 염려가 되는 거예요. 지금은 괜찮으시지만, 나중에 건강이 더 나빠지면 어떡하실 거예요? 그 여자분이 아버지 간병까지 해주실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 말에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준혁이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으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건강 문제는 더 심각해질 텐데, 새로운 관계가 그 부담을 견딜 수 있을까요?
그날 밤,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했습니다. '젊었을 때는 외모와 성격을 보고 연애를 했는데, 지금은 건강 상태와 간병 능력까지 고려해야 하다니...' 웃픈 현실이었습니다.
5: 솔직한 대화 - 재산과 미래
병원 사건 이후, 미자 씨와 저는 조금 더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약속한 카페에 미리 도착해서 창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긴장된 마음에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어요.
미자 씨가 도착했습니다. 언제나처럼 단정한 모습이었어요. 그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건 여전했습니다.
"기다리셨어요? 커피 주문하셨나요?"
"아니요, 같이 주문할게요."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한 후, 우리는 잠시 날씨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두 사람 다 본론으로 들어가기가 조금 어려웠던 것 같아요.
"종석 씨, 건강은 좀 어떠세요?"
"많이 좋아졌어요. 미자 씨가 챙겨주신 약 덕분에 요즘은 잘 지내고 있어요."
미자 씨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깊은 숨을 내쉬었습니다.
"종석 씨,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지난번 일을 겪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우리 나이에 연애는... 젊었을 때와는 다르더라고요."
"네,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자녀들의 반응도 그렇고, 건강 문제도 그렇고... 단순히 두 사람의 마음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더라고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준혁이가 계속 재산 문제를 걱정해요. 미자 씨 자녀분들은 어떤가요?"
미자 씨는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큰딸은 제가 종석 씨 재산을 노리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아들은 오히려 제 재산을 종석 씨가 가져갈까 봐 걱정해요. 막내딸만 응원해주네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미자 씨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습니다.
"사실... 자녀들의 걱정이 이해는 돼요. 우리 세대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만나서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상황이 복잡해지죠."
"맞아요. 준혁이도 그 점을 걱정하더라고요. 제가 먼저 가면 미자 씨한테 재산이 가고, 반대로 미자 씨가 먼저 가시면 자식들끼리 상속 문제로 다툴 수도 있고..."
미자 씨가 제 손을 살짝 잡았습니다.
"종석 씨, 우리 이런 이야기 솔직하게 해보는 게 어떨까요? 서로의 재산 상황이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맞아요. 솔직한 게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각자의 재산 상황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아파트 한 채와 퇴직금으로 마련한 예금, 그리고 국민연금이 전부였어요. 미자 씨도 비슷했습니다. 아파트 한 채와 교직원 연금, 그리고 약간의 저축이 있다고 했죠.
"사실 저는 자식들에게 줄 재산이 많지 않아요. 이혼하면서 재산 분할도 했고, 아이들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느라 거의 다 썼어요." 미자 씨가 말했습니다.
"저도 비슷해요. 지금 있는 게 노후를 위한 전부예요."
그렇게 서로의 상황을 나누면서, 우리는 가능한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결혼하지 않고 따로 살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재산관리를 완전히 분리하는 조건으로 결혼하는 방법, 또는 일정 기간 동거해보는 방법 등을 논의했죠.
"종석 씨, 제 생각은 이래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지만, 현실적인 문제들도 무시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 천천히 가는 게 어떨까요?"
"천천히요?"
"네, 지금처럼 각자의 집에서 살면서 데이트하고, 서로를 더 알아가는 거예요. 결혼이나 동거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고요."
저는 미자 씨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미자 씨 말이 맞아요. 사랑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20대의 특권이었나 봐요. 우리 나이에는 사랑과 함께 현실도 바라봐야 하는 것 같아요."
그날의 대화는 우리 관계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직시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이해와 신뢰가 쌓였어요. 미자 씨와 저는 그날 서로에게 약속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솔직하게 이야기하자고요.
6: 새로운 합의 - 우리만의 방식
미자 씨와 교제한 지 1년이 되는 날, 우리는 처음 데이트했던 국립중앙박물관 근처 공원에서 만났습니다. 1년 전과 마찬가지로 날씨는 화창했고, 우리의 마음도 밝았습니다.
"미자 씨, 이거 선물이에요."
제가 작은 상자를 건넸습니다. 미자 씨가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안에는 은으로 만든 작은 팔찌가 들어있었어요.
"어머, 너무 예쁘네요! 고마워요, 종석 씨."
미자 씨도 준비해온 선물이 있었습니다. 제가 전에 눈여겨보던 만년필이었어요. 아내가 돌아가신 후로 다이어리를 쓰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걸 기억하고 선물해주신 거죠.
"1년 동안 정말 행복했어요." 미자 씨가 말했습니다.
"저도요. 미자 씨 덕분에 다시 설레는 마음을 알게 됐어요."
벤치에 앉아 지난 1년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 자녀들과의 갈등, 건강 문제로 인한 위기, 그리고 솔직한 대화를 통한 이해... 많은 일들이 있었죠.
"우리 자녀들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어요." 미자 씨가 말했습니다.
정말이지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준혁이도 이제는 미자 씨를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약을 잘 챙겨 먹고, 건강해진 걸 보고 마음이 바뀐 것 같았습니다.
"준혁이가 지난번에 그러더라고요. '아버지, 박 여사님이 아버지 건강을 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요."
미자 씨가 빙그레 웃었습니다. "저희 아들도 종석 씨를 많이 좋아해요. 특히 종석 씨가 컴퓨터 고치는 걸 도와주신 뒤로요."
우리는 1년 동안 각자의 가족과 서로를 조금씩 통합해왔습니다. 가족 모임에 서로를 초대하기도 하고, 명절에는 잠시라도 얼굴을 비추는 등 천천히 관계를 발전시켰죠.
"종석 씨, 우리 앞으로는 어떻게 지낼까요?"
저는 미자 씨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면 어떨까요? 젊은 사람들처럼 결혼해서 한 집에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면서, 서로 필요할 때 함께하는 거예요."
미자 씨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아요. '따로 또 같이'처럼요."
맞아요, '따로 또 같이'. 이것이 우리가 찾은 해답이었습니다. 각자의 집에서 살면서 자유와 독립성을 유지하고, 동시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 재산 문제도 복잡하게 얽히지 않고, 자녀들의 걱정도 덜 수 있는 방식이었죠.
"주중에는 각자 생활하고, 주말에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플 때는 서로 돌봐주고..."
"긴 여행을 갈 때는 함께 가고, 명절에는 각자 가족과 보내고..."
우리는 그렇게 우리만의 관계 방식을 그려나갔습니다. 틀에 박힌 결혼 생활이 아닌, 우리의 나이와 상황에 맞는 맞춤형 관계였어요.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재산 문제나 자녀들의 걱정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오히려 우리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든 것 같아요." 제가 말했습니다.
"맞아요. 그런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면서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으니까요."
공원을 거닐며 우리는 앞으로의 계획을 나눴습니다. 다음 달에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고, 겨울에는 미자 씨가 늘 가보고 싶었다던 일본 온천 여행도 계획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는 생각했습니다. 젊었을 때의 사랑과 황혼의 사랑은 다르지만, 어쩌면 황혼의 사랑이 더 깊고 성숙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요. 젊은 날의 격정적인 감정 대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랑.
"미자 씨, 고마워요. 인생의 마지막 장에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 만들어주셔서."
미자 씨가 제 손을 꼭 잡았습니다. "종석 씨, 마지막 장이라뇨. 우리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에요."
하늘에서 별이 빛나기 시작했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이미 하나였죠. 나이 들어 찾은 사랑, 그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풍요로웠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오늘 김종석 님의 '황혼 연애' 이야기 어떠셨나요? 나이 들어 다시 찾은 사랑은 젊은 시절과는 다른 현실적인 문제들에 직면하게 됩니다. 자녀들의 반대, 건강 문제, 재산 걱정까지...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그렇듯이, 진심과 소통으로 이러한 장벽들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따로 또 같이'라는 새로운 관계 방식을 찾아낸 두 분의 지혜가 인상적이었는데요. 황혼 연애가 꼭 결혼이나 동거로 이어질 필요는 없으며,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도 깊은 유대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많은 시니어 분들께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혹시 비슷한 상황에 계시다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관계를 정의해보세요. 나이가 들었다고 사랑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젊은 시절의 열정보다 더 깊고 성숙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니까요.
다음 주 에피소드에서는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댓글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오늘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혼의 나이에도 설렘은 계속됩니다. 여러분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